2013.10.10
쇼코가 끓여준 라면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
9일 밤이었는지 10일 밤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좀 밥 챙겨먹여야 할 것처럼 보이는지 그 이후로 간혹 만나는 일본인들이
밥 사먹이고. 밥 해먹이고, 간식 챙겨주고, 과일 주고…. 그랬었다.
당분간 쇼코, 테츠야, 나. 셋이서 함께 다니기로 했다.
마음이 든든하다.
아임 낫 얼론.
쇼코는 내 또래의 유부녀. ㅎㄷㄷ.
남편이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 주로 혼자 다닌다고 하는데
우째 혼자 다니냐고 물어보니
남편이 길거리 음식도 못 먹고, 가리는 것도 많고
이런 나라에 오면 죽는 줄 아는 사람이라 같이 다닐 수가 없다고.
1년 동안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해 1개월짜리 휴가를 받아서.
1년에 한 달 정도는 해외에서 보낸다고 한다.
그렇게 받은 휴가로 자메이카를 네 번 다녀왔다는데
얼마 전 인터넷 보니 자메이카 살인율 세계 1위더라.
(다시 찾아보니 바뀌었네. 어쨌거나 최상위권.)
간사이벤을 심하게 쓰는 솔직 유쾌한 쇼코.
테츠야 오라버니는 건축가라는데 에도코라는 거 외의 자세한 신상은 모르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대충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1년 정도 여행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귀국 후 요양하다가 다시 여행을 시작한 날
키르기즈스탄 오쉬의 오쉬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났다. 그게 열흘 전.
다들 일단 호로그에는 왔고 목표는 토요일 이시카심에서 열리는 아프간 장터.
파미르 롯지에 사람이 없었던 이유는 내가 토요일 밤에 도착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호로그까지 도착한 사람들의 다음 목적지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시카심일테니까.
목요일이니 할 것도 없고 식물원에 가보기로 한다.
론니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식물원.
걸어가다 보니 좀 멀어서 태워준다는 동네 청년들 차를 탔는데
그 중 하나가 쇼코를 더듬길래
쇼코 괜찮나? 차 세우까? 해서 내렸는데
차에서 내린 쇼코는 내가 그 자식 엄청 세게 꼬집어서 아마 피 났을거야.
하고 말아버린다.
아 뭐지. 저 정도 마음가짐은 있어야 하는 건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이 구도의 사진을 보고 이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눈으로 잘 보면 며칠 전 무르갑에서 넘어올 때 지나온 터널이 있다.
*윗 사진의 뒷편 언저리.
전망이 어마어마하다.
카메라를 들고 다가서니 제복 입은 남자가 뛰어와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했다.
셋이서 말없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볼에 닿던 상쾌한 느낌이 기억난다.
드디어 왔구나. 했던 것도.
이게 뭐라고 그 고생을 했을까. 했던 것도.
그래도 좋구나. 했던 것도.
훈자의 훌륭한 대안이 되겠구나. 했던 것도.
(여기 오는 길도 쉽진 않았지만 파키스탄 카리마바드(a.k.a 훈자) 가는 것 보다는 난이도가 낮으니.
물론 경치는 훈자 윈. 인프라, 접근성은 호로그 윈.)
근 20일 전에 비쉬켁에서 신청한 이란 비자용 초대장은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
우즈벡 초대장을 받겠다고 버진 아일랜드로 송금한 내 돈은 어쩌고 있는지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알게 뭐람.
(이라고 썼지만 그 당시 내 입에서 나오던 말의 절반은 비자, 대사관 투어 걱정
나머지 절반은 강 건너 탈레반 걱정이었다.)
한국의 일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내려오는 길에는 서류 가방을 들고 퇴근하시는 아저씨의 차를 히치.
점심이나 먹자 하고 호로그 시내로 들어갔다.
*호로그 시장에서 발견한 타타 버스.
중고차던데. 저 차의 차생역정을 들어보면 몹시 흥미진진할 듯.
*확대해보니
음…
타지키스탄에 있는 인도관련? 뭐시기 같은데 뭐라는건지…
아. 이 정성으로 공부를 했으면 뭐가 되어도 되었을텐데.
공원이나 가볼까.
셋이서 중앙 공원으로 걸어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며칠 전에는 아무도 없더니?
*위문열차?
*누군지는 모르지만 열정의 춤사위의 주인공.
쇼코는 둘이 같이 찍었는데 나도나도 하니까 바빠서 가야한다며 매니저가 데리고 가버렸다.. 힝.
*잘 가이소.
*지역 전통 모자를 쓴 두 청년.
당시 파미르를 휩쓴 패션 트렌드는 추리닝.
*나는 당신이 지난 여름에 어떤 얼굴이었는지 알고 있다.
*너는 춤을 추어라.
나는 이야기나 할란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처녀 총각들이 나름 챙겨 입고 여기저기서 쑥덕대고 있다.
오호. 작업의 장이 좀 건전한데?
*아이들을 트럭에 실어 내다파는 게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내 기억에는 호로그 시내에 신호등이 두 개밖에 없는데
행사 때문에 차도 사람도 엄청 몰려나왔다.
우리끼리 이런 정체를 볼 수 있다니. 라며 놀라워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일본인이 한 명 더 와있다.
아이코.
돗토리 출신이라는데 여행 2년이 넘어간다고.
내일 같이 이시카심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프리카 여행만 1년 이상에 서아프리카도 다녔다고.
뭐야 이 언니 무서워.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니 작년에 카불에 세 번 다녀왔다고.
아프가니 친구들이 참 좋아서 자주 가게 된다고.
뭐야 이 언니 무서워.
+ 일본 여권 부럽네.
*내가 이 언니랑 얼굴은 다르지만.
나도 나름 내 구역에서는 크레이쥐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넓고 강적은 많다.
(또 한 가지 기억나는 게 당시 아이코가 설사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사마르칸트의 바호디르에서부터 시작된 설사라고 했다.
당시 바호디르에 묵던 사람들이 죄다 설사를 하고 있었다고.
쇼코가 왜 그러냐고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멀쩡하던 사람들이 도착하면 설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다들 밖에 못 나가니 모여앉아 함께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나중에 내가 갔을 땐 다들 멀쩡했는데.
여튼 쇼코에게 정로환을 받아두고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치마 주머니에 넣어둔 정로환을 쏟아버렸다며 다시 얻어서 먹고도
하루 이틀을 더 고생하더라.
일본 정로환도 냄새 고약한 건 매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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