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일본총각이 한 명 있길래
'일본인이죠?' 하고 접근, 처음으로 얼굴을 튼다.
코지마 아츠시. 우즈벡에서 알게 된 일본어를 공부하는 친구가 고향집 결혼식을 구경시켜 주겠노라 해서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2주전에 일본에서 아시아나로 타슈켄트로 와서 이미 사마르칸트, 히바, 부하라 3종 세트를 마치고 타슈켄트에서 멍 때리고 있는 중이란다.
둘이 한참 노닥거리고 있는데 일본 총각이 하나 더 와서
점심 먹으러 안갈래요? 어디갈건데요? 초르수 말고 있나? 없죠. 그럼 가야지.
해서 셋이서 다시 초르수 바자르로 향한다.
아츠시가 시장에서 뭘 본 게 있다고 보러 가자고 한다.
샤슬릭 맛이나 볼까 했는데 샌드위치? 케밥?의 비주얼을 보는 순간
오늘 점심은 이거다.
*심지어 빵도 즉석에서 따뜻하게 구워줌.
무슨 고기인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3500숨
물어볼 수도 없고 대답한다고 알아들을 수도 없다. 참나. 웃어야할지…
(물론 손가락으로 뿔 만들어 머리에 갖대대면 소.
두 팔을 접어서 옆구리에서 푸드덕대면 닭.
돼지는 안 먹는 동네니 패스.
하면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옆에 모르는 사람 둘이나 있는데 굳이 그런 스킬까지는 사용하지 않기로 한다.
근데 양은 어떻게 해야하지?)
옆의 음료수를 받아들고 돈을 내려고 하니 어여쁜 아가씨가 멈칫한다.
둘이 600이라고 했다가 다시 각자 500이라고 했다가.
오늘 아가씨 사탕 몇 개 먹겠네.
아츠시는 이거 음료수는 공짜인 거 같은데.. 라는 말을 남긴다.
어째 점점 호갱님이 되어간다.
배를 두드리며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고 1000숨
숙소로 컴백.
인터넷에서 본 바로는 나보이 극장에서 6시에 공연이 시작된다고 하니
아직 4시간이 남아있다. 두 시간만 적당히 보내고 오늘은 오페라나 봐야지.
하다가 아츠시에게 슬쩍 말을 꺼내니 방에서 일본판 세계를 간다 13~14를 들고 온다.
어 공사중이라 안한다는데요?
뭐라카노 여름에만 쉬고 9월에는 한다카던데. 있다가 사장님 오면 물어보재이.
사장님 왈.
10월 되면 시작하지 싶은데.
아 그럼 오늘의 일정은 여기서 끝이네.
안 물어보고 그냥 갔으면 지하철이랑 극장 건물 구경만 할 뻔했네.
일본어 회화 연습이나 하면서 오후를 보내야겠네.
근데 아츠시 한국어 좀 알려달랜다.
내가 보던 일본어 교재를 보더니
'니시오씨는 항상 출근이 빠르시네요.'
를 보고 처음 배운 단어가 출근.
처음 배운 단어가 출근이라니. 하.
좋아요. 맛있어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부탁합니다. 담배. 등등을 실컷 배우더니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를 해서
'안녕하세요. 담배 좋아요.' 이런다.
이런 응용력있는 녀석 같으니. 근데 난 얘한테 무슨 짓을 한거니.
갑자기 잊고 있던 게 생각나서 사장할배에게
초르수 시장 보통 언제 문닫아요?
보통 6시 되면 닫는다고 봐야지.
그럼 5시 반에는 시장 한 번 더 갔다와야겠네.
생각하는데 같은 방 새미가 짐을 싸고 있다.
새미 어디 가나?
어. 친구집에 자러간대이. 근데 거주 등록 때문에 짐은 놔두고 간대이. 이런 거 왜 하는지 모르겠네.
그러게.
호주에서 온 새미에게는 영국 출신 일행이 두 명 더 있는데
마당에 나가보니 한참 아츠시와 대화중이다.
사이먼과 그 친구. 편의상 가펑클이라고 하자.
사이먼은 일본에서 13년 거주. 영어 선생으로 일을 시작했다는데 1년짜리 휴가를 받아서
차를 몰고 페리로 한국, 다시 페리로 블라디보스톡. 에서부터 러시아, 카자흐, 키르기즈를 거쳐 타슈켄트.
크리스마스에 맞취 영국까지 갔다가 최종 목적지는 케이프타운이란다.
이건 무슨.
사이먼 앤 가펑클, 나, 아츠시는 일어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새미는 컴퓨터만 붙들고 있다.
호주 출신인데 뻘쭘하지?
한국에서 4, 5번 왔다갔다고. 밥 먹으러.
사이먼과 가펑클이 동시에 외친다.
'김치 and 삼겹살!'
외국인들의 삼겹살 사랑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사이먼이 일본에서 만난 뉴질랜드 사람이 있는데 타슈켄트에 수영장 딸린 집이 있다고
Pool side에 늘어져서 맥주먹고 놀려고 가라 아니 야매 아니 불법 거주등록증 만들어서 놀러간단다..
사이먼 써티 투 이얼즈 올드. 라는데 한 살 오빤데. 흑. 부러우면 지는거다.
셋은 부웅 차를 타고 떠나고
아츠시에게
살 거 있어 시장 간대이. 한국에서 잊어버리고 샤워 타올 안 가져 왔대이. 어제 맨 손으로 바디클렌저 몸에 발랐대이.
했더니 지도 일본에서 안 가져왔단다.
어째 똑 같은 걸 사러가냐고 둘이 길바닥에서 크게 웃는다.
내가 아까 슈퍼 가봤는데 그걸로 샤워하면 껍데기 벗겨지겠더래이.
어 나도 봤는데 너무 뻣뻣해서 안 샀는데. 나는 샤워할 때 셔츠 빨면서 그걸로 몸 닦았어.
아 그런 방법이. 하나 배웠대이.
(그렇지만 나는 써먹을 수 없는 스킬이대이. 반 팔 한 장밖에 없대이.
것두 잘 안 마르는 두꺼운 면. 빨면 다음 날은 하루 종일 잠옷입고 있어야 된대이.
인터내쇼날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대이.)
초르수 바자르에서 찾던 샤워타올을 발견.
3000숨이라는 걸 귀요미 아츠시가 한 마디 해서 2500숨.
아싸 신이 나서 다시 컴백.
*고기 파는 곳.
소 그림을 보니 여기 소고기 먹으면 완전 튼튼해질 것 같아.
있다가 저녁이나 먹으까 하니 배 안고프다고 좀 쉬다 나오겠단다.
일기를 쓰고 블로그 정리를 하고 괜히 왔다갔다 하다보니 1시간 반이 지나가는데
배가 고프다 못해 쓰리고 가스가 차오른다.
아. 피자가 있었지.
당장 살아야겠으니 일단 먹자. 싶어 전자레인지에 피자를 데워서 먹는다.
저녁 우야지. 또 먹지뭐.
플로리다에서 온 할매가 니 저녁 피자 먹나? 맛있겠네. 하신다.
그래도 안줘요. ㅎ
*30초 돌렸는데 치즈가 녹아내리네.
인천 공항 에어카페 구운 마늘 & 치킨 피자 정말 맛있음.
식어도 맛있고 하루가 지나도 맛있음.
퉁퉁부은 얼굴로 아츠시가 나타난다.
잤어. 30분만 자려고 했는데 지금 일어났네.
미안테이. 피자 먹어뿟대이. 배가 좀 부를라칸대이. 니 일단 딴데서 밥 묵고 있다가 맥주나 마시까?
그래요.
아. 근데 피자 남았대이. 내일 아침에 나는 키르기즈 갈 거라 지금 안 먹으면 버려야 될 거 같은데 니 묵을래?
괜찮아요?
그럼 그럼. 니는 괜찮겠나? 이거 한국 공항에서 싸온 거대이. 24시간 넘었대이. 먹고 식중독 걸려도 나는 모른대이. 나는 내일 없대이.
괜찮아요. 먹어도 되요?
ㅇㅇ
자 그럼 이제 맥주 사냥에 나서 보재이.
둘이 컴컴한 대로를 걸어가는데 아츠시 슈퍼를 지나간다.
야야 어디가노? 술집 찾아야죠. 마 날도 어두운데 사 가지고 가재이. 술 먹고 밤에 돌아댕기면 안된대이. 그래요.
근데 슈퍼에 맥주가 없다. Sarbest가 맛있다는데 고르는 재미는 커녕 없다.
물어보니 역시나 비어 녯. 이다.
아츠시가 그럼 저기 편의점 가볼까요? 해서 갔더니 비어 녯.
그줴 비어? (맥주 어디?) 하니 길 건너 호텔 초르수 있는데 가면 간판 있을거랜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뭘 아나.)
길 건넌다. 역시 비어 녯.
아츠시 왈. 그럼 저쪽으로 좀 더 가볼까요?
길을 건너니 끝도 없는 가로수가 보인다. 가로수만. 건물 따위는 없는거다.
안되겠대이. 돌아가서 사장님한테 물어보고 가까우면 다시 나오고 안되면 말재이.
그래요.
사장님 왈.
8시 되면 술집 문 닫는데. 지금 8시 20분이네. 못 구해요.
OTL
그래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내자.
아츠시 왈.
다음에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면 그 때 맥주 같이 마셔요.
그러재이.
(대학 3학년 휴학생 20살. 젊음은 좋은거여.
도쿄-인천-타슈켄트로 들어와 2주 경과.
앞으로 키르기즈 찍고 중국으로 넘어가 엄마 계시는 상해까지 쭉 여행하고
추워지면 동남아, 인도. 봄이 오면 유럽으로 넘어간다는 애랑 내가 맥주를 어떻게 마시나.)
씻고 짐싸고 컴퓨터 고쳐주러 나갔다 온 하야시와 합류해서 생뚱맞게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들어왔다.
3인 도미토리인데 애니스는 떠나고 새미는 짐만 놓고 나가서 자고
싱글룸이 되어서 라디오를 켜놓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P.S. 글을 올리는 9월 8일. 키르기즈스탄 비쉬케크 사쿠라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데
등 뒤의 모스크에서 아잔이 울려퍼지니 동네 개들이 거기에 맞춰서 같이 워~우. 하고 울다가 아잔이 끝나니 멈춘다.
개들도 신실한 희한한 동네. 한국이었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갔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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